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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4 02:01 FOOTBALL/P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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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COME TO US AGAIN, EDUARDO!

SAVE HIM, MOTHER 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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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치옹
2007.09.22 22:44 FOOTBALL/Player

 아스날과 함께 좋아하는 두 팀이라면 인테르와 울산을 들 수 있다. 울산이야 내 풋볼 라이프에서 시발점이 된 팀이니 언터처블이고...아스날 역시 동일시즌부터 보기 시작했으니 언터처블. 인테르도 아마 98~99 시즌부터 관심있게 본 것 같다. 역시나 발단은 레플과..그당시 아식스 매장에 있던 전신사진. (누군지 모르겠다. 96~97 엄브로 써드 킷을 입고 아식스 축구화를 신고 있었는데...솔라리랑 비슷한 이미지...)

 원래 인테르야 생각없이 선수 지르고, 그만큼 성적 못내는 비효율의 팀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모라티 영감이 선수들한텐 잘하지만, 감독들한텐 비호감일지도. 그래도 모라티는 로만처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구단주는 아니다. 그냥 정말 인테르를 사랑하는구나 이걸 느낄 수 있으니까.

 04~05 시즌, 인테르는 노장 센터백 시니사 미하일로비치Sinisa Mihajlovic를 영입했다. 유고의 폭군, 왼발의 프리키커인 그는, 라치오에서 인테르로 건너오게 되었다. 팀 동료였던 데얀 스탄코비치Dejan Stankovic가 한시즌 먼저 인테르로 가 있었고, 또한 예전 팀 동료였던 로베르토 만치니Roberto Mancini가 감독으로 부임해있는 팀이었다. 그리고 그곳, 인테르엔 마르코 마테라치Marco Materazzi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하일로비치-마테라치의 센터백 라인이 04~05, 05~06의 두 시즌동안 얼마나 가동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부르디소나 이반 코르도바, 사무엘 등의 센터백 라인이 건재하고 있었으니까...하지만 난 그때 이 센터백 라인이면 상대편이 한수 접고 가겠구나를 상상하고 있었다. 물론 성적은 그만큼 안 나왔지만...아, 05~06시즌엔 어찌 되었든 리그우승, 코파이탈리아 우승은 했구나. 04~05 시즌에는 코파이탈리아 우승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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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isa Mihajlovic - 04~05 in FC INTERNAZIONALE

 미하일로비치는 잘 알다시피 센터백이지만 언제나 백넘버 11번을 고수하고, 왼발 프리킥의 황제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강력한 포스를 보여 주는 선수이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토너먼트인 유로 2000에서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으로 출정, 유니폼의 목 카라를 올리고 경기를 뛰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는 미하일로비치가 서른전이었으니까 지금만큼 카리스마는 없었지만, 그래도 '와 이사람 ㄷㄷㄷ인데' 라는 생각은 충분히 들 만한 선수였다. 인테르에서도 03~04시즌 스탄코비치가 11번을 달았지만 04~05시즌 마하일로비치가 이적해 오자, 스탄코비치는 군말 없이 11번을 내주고 자신은 25번으로 번호를 바꿔 달았다. (05~06시즌 사무엘이 오자 또 25번 주고 5번으로 바꿔 달았다.)
아마 예전 팀동료이자 축구계의 대선배, 국가대표 선배에게 바치는 일종의 존경심같은게 아니었을지.

 미하일로비치의 왼발 프리킥은 정말 유명하다. 적중률과 궤적, 그 극적인 상황은 그를 결국 영웅으로 몰고갈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의 프리킥을 보고 있으면 정말 와 대단하다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이다. 베컴이나 주닝요 페르남부카누랑 비교하는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기는 싫다. 누가 누구보다 잘찬다 이런 소리는 난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난 누가 최고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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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o Materazzi - 06~07 in FC INTERNAZIONALE

 마르코 마테라치. 내가 현역 선수 중 가장 좋아하는 1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이면서도 원리주의자적이고, 승리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그럼 모습. 상대편에겐 욕을 넘어 저주를 받는 사나이지만, 적어도 인텔리스타들에겐 무한한 지지를 얻는 선수가 바로 마테라치이다.

 사실 마테라치도 대기만성형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안정환과 함께 페루자에서 뛰던 그 시절, 마테라치는 그저그런 세리아의 이탈리안 센터백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인테르로 이적한 그 후, 그는 바로 스타에 오를 수 있었다. 실력의 성장도 놀라웠지만, 상대편 선수를 무참하게 까는 그의 스타일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그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 그의 동영상을 보면 거의 '폭행' 이나 '린치'에 가까운데, 지금까지도 이런 그의 스타일을 유지한다는 게 조금은 놀랍기도 하다.

 사실 마테라치의 팬으로서, 여기저기서 여러가지 소리를 많이 듣는다. 원색적인 비방이나 욕설은 기본이고, 축구 볼 줄 모른다는 소리도 들어 봤다. 특히 지난 월드컵 지단 사건 이후로 마테라치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나같은 사람은 그냥 입 꼭 다물고 있어야 할 만큼 욕을 들었다. 하지만 뭐 어때, 그게 그사람의 매력인걸.

 남들이 험하다고 하는 길이라도, 내가 좋으면 가는거다. 난 굳이 나의 취향을 숨길 생각도 없고, 남들에게 내 취향을 설득시킬 생각도 없다.

 마테라치가 요즘 3개월 부상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더라도 난 환영한다. 지금까지 너무 쉼없이 달려와서 좀 쉴 떄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테르야 다른 센터백 자원도 많으니 잘 커버가 될 것이고....(사실 인테르의 성적은 크게 관심이 없어졌다. 우승이나 아니냐만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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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르의 수석코치가 된 미하일로비치


  두 시즌 동안 이어져 왔던 인테르의 공포 라인이 이제는 사제관계로 변하게 되었다. 미하일로비치는 06~07시즌부터 인테르의 수석코치직을 맡아서 만치니를 보좌하고 있다. 06~07시즌의 우승으로 이들의 조화는 일단 합격점을 받은 상태이다. 물론 마테라치 역시 팀내 공헌도 상위를 달리고 있다. (밀란더비에서 골 넣고 세리머니하다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한 그 경기 아직도 잊지 못한다. ㄲㄲ) 이들의 콤비 플레이를 더 이상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어설픈 인텔리스타로서 기억할만한 하나의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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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 챔스, 밀란과의 경기에서 관중들의 홍염 투척으로 경기가 중단되었을 때 찍힌 사진. 이때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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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로비치의 마지막 시즌. 05~06 시즌 플레이 모습. 올빽으로 넘긴 머리에서 포스가 좔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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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치옹
2007.09.06 23:08 FOOTBALL/Player

얼마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푸에르타, 이 셔츠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세비야의 전도유망한 플레이어였던 그는, 다니엘 알베스가 첼시로 떠날 경우, 그의 자리를 메꿀 후보 1번으로 떠오르던 선수였고, 스페인 대표팀에도 발탁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던 선수였다.

하지만 푸에르타는, 07~08 라 리가 개막전인 헤타페와의 경기 도중 쓰러져 응급처치 후 스스로 피치를 벗어났지만, 그 후 다시 쓰러져 결국 숨을 거두고야 말았다. 그의 죽음은 전 세비야 시, 전 스페인, 전 유럽을 애도의 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의 죽음 앞에서는 철천지 앙숙간인 베티스와 세비야의 팬들도 한 마음으로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가 입원해 있던 병원이나, 그의 사망 후, 산체스 피스후안에는 5000명이 넘는 베티코들이 직접 방문,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또한 베티스의 총재 로페라 역시 푸에르타를 위한 애도성명을 발표하였다.

푸에르타가 세비야에 있던 동안, 그는 세비야의 중심 선수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이미 중심 선수였을 것이다. 그는 2006년 4월 샬케와의 UEFA컵 경기에서 득점하였고, 그 이후 세비야는 우승이라는 영광을 누리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클럽 역사상 최 전성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는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

Adios Puerta.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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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히오 라모스 - 지난 비야레알과의 경기 후 푸에르타를 추모하는 세리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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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ting Material Made by Kimccine.com - Thanx a 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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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치옹
2007.08.13 23:51 FOOTBALL/P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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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 Overmars - THE LEGEND


MARC
 
WINGS

OVER TO
 
THE
 
EAGLES



마크 오베르마스가 1997년 아약스에서 아스날로 이적했을 당시, 그의 영입은 아르센 벵거 시대의 첫번째 메이저 사이닝이라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 사이에서는 그의 전성기가 이미 지났고, 부상 경력이 있는 선수를 사오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벵거는 보편적 믿음을 무시한 채 자신만의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또한 아스날 서포터들은 아스날의 럭키 스타가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었다. 오베르마스는 벵거의 첫번째 황금기에 크게 기여했다 - FA컵 결승전에서 득점했고, 그 당시 올드 트래포드에서 거머쥔 아스날의 '더블'을 굳게 지켰다. 그리고 그는 일반적인 윙일뿐만 아니라 그의 포지션에서 그의 득점력은 놀라울만 했다 : 그는 143경기 출장, 41골을 득점함으로서 평균 4경기당 1골이 넘는 득점률을 기록했다. (4경기당 1.15골 정도) 그리고 하이버리에서의 3시즌 동안, 그 작은 네덜란드인은 하이버리의 아스날 팬들에게 피치 왼쪽 측면에서 앤더스 림파Anders Limpar 이후 최고의 모습을 선사했다. 2000년 여름 그가 엠마누엘 쁘띠Emmanuel Petit와 함께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을 때 보도된 그의 이적료는 25M 파운드였고, 이로 인해 오베르마스는 네덜란드 역사상 가장 비싼 사나이가 되었다.

7년 후, 그는 댄 브레넌Dan Brennan 과 함께 그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고, 그의 조국 네덜란드에서 단장으로 있는 그의 첫번째 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Q) 당신은 2004년, 부상때문에 선수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그 후 무엇을 하면서
     지내셨습니까?

A) 지금까지 아버지와 형제들과 함께 회사를 운영하느라 꽤 바빴습니다. 우리는 빈티지 자동차 사업을 했는데, 얼마 전 매각했지요. 지금 우리는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 상업적인 빌딩과 임대업 등을 하고 있죠.

Q) 당신은 지금 네덜란드 클럽, Go Ahead Eagles의 단장입니다.
     어떻게 그 일을 맡게 되었습니까?

A) Go Ahead Eagles(이하 Eagles)는 제가 처음 선수생활을 시작했던, 네덜란드의 Deventer라는 도시에 있는 클럽입니다. 저는 2년 반 전부터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클럽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클럽의 회장님께서 저에게 투자를 권유하셨지요. 저에게 그것은 감정과 비즈니스가 뒤섞인 결정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클럽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만, 우리는  제가 클럽을 운영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저는 단장으로 Eagles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재정적 손실을 입었고, 전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로, 우리가 무엇을 할 만한 적절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전혀 다른 역할로 축구계에 복귀하는 것이 쉬운 결정이었나요?

A) 나는 물론 내가 은퇴한 후, 경기를 뛰는 것을 그리워했고, 또다시 비슷한 어떤 것에 얽매여야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책상의 다른 쪽(선수가 아닌 보드진)에 앉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고, 내 인생에 있어서 '건강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습니다.
Eagles는 작은 클럽입니다 - 평균 6,000여명의 관중이 입장하기 때문에 그닥 시끄럽지는 않지요. 만약 다른 클럽이 나에게 이러한 단장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한다면 95% '아니오' 라고 대답할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다른 어떤 클럽에 소속되길 원치 않는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내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고, 자유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지요. 아이들을 차로 학교까지 태워다줄 수도 있고요. 요즘은 모든 것이 '돈, 돈, 돈'입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더 중요한 것들이 훨씬 많아요...

Q) 요즘 Eagles는 어떻습니까? 당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A) 처음 우리가 클럽에 왔을 때, 우리는 추후 3년간에 대한 계획을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재정적 관점에서 보자면 네덜란드에서 가장 재정적으로 탄탄한 클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은 네덜란드 축구협회에 의해 인정된 상태입니다. 우리는 지금 1부리그 - 에레디비지 한단계 밑 - 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즌 6위로 리그를 끝마쳤지요. 플레이오프에 거의 근접했었습니다. 이번 시즌 우리는 좀 더 높은 순위에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프로모션을 좀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목표를 이루는 데에 1년 정도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Q) Go Ahead Eagles는 축구 클럽의 이름치고는 약간 이상한데요...

A) 내가 아스날에 있을 때, 사람들은 내가 뛰었던 클럽 Go Ahead Eagles의 이름을 말했을 때 웃곤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클럽이 영어식 이름을 가지고 있던 것이 생소하게 들렸나 봅니다. 클럽이 그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는 1970년대에 클럽이 영국인 감독, 배리 휴즈Barry Hughes를 고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클럽의 이름을 만들었고, 엠블럼까지 제작했습니다. - 독수리가 들어간 그 엠블렘 말이죠.

Q) 당신의 아스날 시절을 되돌아 봅시다 - 당신이 1997년 아약스를 떠나 아스날로 이적했을 때 언론에서는 당신의 몸 상태를 두고 말이 많았습니다. 아스날이 큰 위험요소를 떠안았다는 말들과 함께요...

A) 저는 무릎 부상에서 돌아온 상태였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깎아내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한 점들은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그러나 그 당시 난 내 자신의 몸상태에 1 퍼센트의 의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르센 벵거 감독은 나를 믿었지요. 그는 내가 뛰는 것을 몇번 보았고 그것은 그가 결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날 믿어줬다는 것은 나에게 정말로 좋은 점이었지요.

Q) 당신은 당신의 커리어에서 유럽의 빅클럽 3곳에서 뛰었습니다. - 아약스, 아스날, 바르셀로나이지요. 당신의 아스날 시절은 어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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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MARS with Barca Shirt

A) 사람들은 언제나 내 커리어에서 최고의 시절이 언제였는지 묻곤 합니다. 나는 매년 아스날로 돌아갑니다만, 바르셀로나를 떠난 이후 그곳에 한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여러분들께 조그마한 힌트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난 믿을수 없을 만큼 아스날에서의 하루하루를 즐겼습니다. 물론 분위기도 좋았고요, - 스타디움과 드레싱 룸에서요 - 그리고 그때는 클럽에도 최고의 시절이었습니다. 난 아스날에서의 3시즌동안 항상 성공을 맛보았고, 개인적으로 선수로서 최고의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우리는 피치에서 최고의 화음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잉글랜드 출신의 선수가 6~7명 있었고, 4~5명 정도의 외국인 선수가 있었죠. 나는 잉글랜드에서의 일상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토요일 오후 3시에 보통 경기를 하곤 했죠. 스페인으로 간 후엔 절대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선 보통 저녁 9시경에 경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비행기나 호텔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나는 저녁 10시에 잠자리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그것은 나에게 전혀 좋은 일이 아니었죠.

Q) 당신이 엠마누엘 쁘띠와 함께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받은 이적료가 25M파운드라고 보도되었습니다. 당신을 네덜란드 역사상 가장 비싼 선수로 만들어 준 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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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Emmanuel Petit


A) 그들은 믿을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금액으로 나를 이적시켰습니다. 아스날에겐 그러한 제안이 상당히 시기적절한 제안이었다고 생각해요. 나는, 네덜란드 사람으로서, 그것은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 크루이프와 같은 레전드들이 바르셀로나에서 플레이했기 때문이죠. 바르셀로나는 루이스 피구를 바로 얼마 전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킨 직후였고, 그 때문에 나에게 더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나에 대한 기대 때문에 얼마간의 부담이 있던 것은 사실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나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원했던 것 같아요 - 호나우도나 호마리우처럼요. 하지만 난 절대 그런 스타일의 선수가 아닙니다. 난 언제나 팀 플레이어였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있던 4년여간의 시간 동안, 클럽은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리그를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었습니다. 바르셀로나와 같은 거대한 클럽은 결과가 상당히 중요하지요. 당신이 성공 없이 1년을 보냈다고 예상해 봅시다 - 그것은 괜찮아요. 그러나 그게 2년이라면, 혹은 3년, 4년이라면 주변 상황들은 매우 좋지 않게 돌아갑니다. 바르셀로나는 4년간 6명의 감독들을 임명했었고, 4명의 회장이 거쳐갔죠. - 일반적이던, 튼튼한 경우던 간에요. 당신이 그러한 상황에 있다면 팀의 사기는 매우 안좋아질 겁니다.

Q) 티에리 앙리는 북런던에서 누 캄프로, 당신과 동일한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가 간 것이 옳은 것일까요? 그가 그 곳에서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음, 그는 아스날에서 7~8년을 뛰었습니다. 그것은 월드클래스 선수가 한 클럽에서 뛰기엔 매우 긴 시간이었죠. 그리고 그가 아스날에서 그의 전성기를 바쳤다는 것에 대해 그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양 구단이 좋은 거래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적 시기는 좋았어요. 나는 그가 1년 일찍 이적했더라도 놀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지난 시즌 그는 부상으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아스날과 그의 조국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경기를 뛰었는가를 찾아 보면 그것은 놀랄 만한 일도 아닙니다. 난 그가 이제 지친 것이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자리를 옮길 필요가 있습니다. 난 그가 거기서 매우 잘 할것이라고 생각해요.

Q) 당신은 당신과 같은 네덜란드 출신인 로빈 반 페르시Robin Van Persie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부상을 당하기 전에 매우 좋은 출발을 보여줬죠. 당신은 그가 한단계 성장해서 앙리의 빈 자리를 메워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A) 물론 난 아스날에서의 그의 경력을 꾸준히 지켜 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가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는 엄청나게 발전했어요. 하지만 그는 아직 팀을 위해 배울 것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난 아스날이 미래에 그에게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라이언 바벨은 프리미어십으로 이적한 가장 최근의 아약스 공격수입니다. 그는 아스날과도 한동안 링크되었죠. 결국 리버풀과 계약했습니다만, 그는 어떨 것이라고 보시나요?

A) 나는 리버풀이 그의 이상적인 클럽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년 전 난 그에게 아스날에 대해 이야기해 줬어요. 난 그가 아스날에 더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는 2M 파운드정도라는 가격으로 이적이 가능했어요. 다른 공격수, Maceo Rigters(NAC 브레다에서 블랙번 로버스로 이적)는 그가 프리미어십에서 뛸 만한 실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네요.

Q) 당신은 요즘도 아스날의 사람들이랑과 연락하고 계시나요?

A) 저는 적어도 1년에 한번 정도 런던에 가서 아스날의 게임을 관전합니다. 그리고 구단의 여러 사람들과 아직까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난 아직도 아스날의 내부 사정을 꽤 잘 알고 있어요.

Q) 저희에게 다른 할 말은 없으신가요?

A) 모든 아스날 서포터들에게 감사를 보내고, 아스날이 다음 시즌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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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lways Miss You, Marc Overmars


PS) 불펌 금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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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치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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